대한민국 의료는 세계가 인정한 성과를 가지고 있다. 병상 수만 놓고 보면 그렇다.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OECD 평균의 몇 배에 달한다는 공식 통계가 반복해서 발표돼 왔다. 숫자만 보면, 우리는 이미 ‘의료 강국’이다. 그러나 이 숫자는 현장에서 거의 아무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의료는 총량이 아니라 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병상이 많다는 것과 필요할 때, 살아서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병상은 많지만, 있는 곳에만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와 공공 통계를 보면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진다. 상급종합병원과 중증 치료 인프라는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서울과 수도권은 인구 대비 상급종합병원 병상과 전문 의료 인력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반면, 지방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 머문다. 이 격차는 단순한 불균형이 아니라, 생존 가능성의 차이로 이어진다. 숫자로는 병상이 충분한 나라. 현실에서는 중증 환자가 갈 곳이 없는 나라.
이 모순이 바로 대한민국 지방 의료의 현재다. 의료는 치료의 문제가 아니라 이동의 문제가 됐다. 지방에서 암이나 심혈관 질환, 중증 뇌질환이 발생하는 순간, 치료는 병원 안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이동에서 시작된다. 지방 환자와 가족에게 치료는 의료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거리, 시간, 체력, 비용의 문제로 바뀐다. 공식 통계와 연구에서도 농어촌·지방 거주자가 질병을 앓고도 의료 서비스를 제때 이용하지 못하는 비율이 도시보다 높다는 사실이 반복해서 확인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치료 시기를 놓치고, 예후가 나빠지고,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는 구조적 문제다. 의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닿을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의 의사 수는 OECD 평균보다 낮은 편이라는 분석이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의사의 ‘절대 수’보다 ‘배치 구조’다. 전문의와 응급 의료 인력은 수익성과 효율성을 따라 움직이고, 그 결과 지방은 늘 마지막 순서로 밀린다.
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지방 의료기관은 필수·중증 치료에서 계속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의료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설계의 문제다. 통계는 말하지 않는다, 대신 드러낸다. 통계는 감정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통계는 현실을 숨기지도 않는다. 지방에서 병들어가는 사람들, 치료를 위해 길 위에서 시간을 쓰고 체력을 소모하는 가족들, “멀리 가면 병원이 있다”는 말 앞에서 무력해지는 환자들. 이 모든 장면은 숫자 뒤에 있다. 병상이 많다는 통계 뒤에는 도달할 수 없는 의료가 있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지방 의료 문제를 두고 “병원을 더 지을 수 있느냐”를 묻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이제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국가는 어디까지 의료 접근성을 책임질 것인가? 중증 환자의 이동 부담을 개인의 몫으로 둘 것인가? 지방에서 늙는 삶을 감수해야 할 선택지로 방치할 것인가? 의료는 시장에 맡길 수 있는 서비스가 아니다. 의료는 생존 인프라다. 지방에서 늙는다는 것의 진짜 의미, “지방은 늙어간다”는 말은 인구 구조의 문제가 아니다.
아플 때 버틸 수 있느냐의 문제다. 지방 소멸을 걱정하면서도 병들면 떠나야 하는 구조를 방치한다면, 그 어떤 인구 정책도 선언에 그칠 뿐이다. 도시는 소비로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는 생존을 외면하면 유지되지 않는다. 지방 의료 격차는 예산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가 국민의 마지막 시간을 어디에서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철학의 문제다. 이제는 정말, “큰 병 걸리면 대도시에 살아야 한다”는 말을 대한민국에서 정책적으로, 제도적으로 끝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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