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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전기를 끌어올릴 것인가, 산업을 내려보낼 것인가 (이현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전기·물·물류로 따져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호남 이전론”
총괄사무국장 박시현   |   송고 : 2026-01-06 20:57:31
(이현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새해 벽두부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말이 거칠어졌습니다. “그걸 호남으로 옮기자”는 주장도, “국익을 해친다”는 반발도 공개적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발단은 전력 문제였습니다. 2025년 12월 말, 정부 고위 인사가 “전기가 많은 지역으로 옮겨야 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로 언급한 뒤 논쟁이 커졌고, 1월 들어서는 전북 정치권이 ‘전북 이전 특위’까지 꾸리며 아예 의제로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논쟁이 지역 감정 싸움으로 흐르면, 또 하나의 소모전으로 끝납니다. 지금 필요한 건 “누가 더 억울하냐”가 아니라 “어디가 더 합리적이냐”를 따지는 일입니다. 반도체는 공장만 세우는 산업이 아닙니다. 전기와 물, 물류가 한 몸으로 따라붙는 산업입니다.
그래서 저는 단순히 ‘이전하자’고 감정에 호소하고 싶지 않습니다. 전기(전력 구조·RE100), 물(장거리 관로의 비용과 리스크), 물류(광양 해상 기반과 무안의 단계적 항공물류) 이 세 가지를 숫자와 현실로 따져보면, ‘호남 이전’은 구호가 아니라 선택지로 올라옵니다. 이제 전기부터 차근차근 짚어보겠습니다.

 

1) 전기를 끌어올릴 것인가, 산업을 내려보낼 것인가
반도체 전력 이야기를 하면 “팹 1개당 1GW” 같은 숫자가 먼저 떠돌곤 합니다. 이 수치가 모든 팹에 딱 들어맞는 고정값은 아닙니다. 다만 중요한 건 따로 있습니다. 어떤 가정을 쓰든, 용인 클러스터의 전력 수요가 이미 한 지역이 감당하기엔 ‘국가급’ 규모로 논의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용인 클러스터 전력 수요를 16GW 수준으로 잡고, 이는 2024년 국내 최대부하의 약 16.5%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16GW가 어느 정도냐면, 원전을 예로 들면 감이 옵니다. 원전은 정격출력이 1GW라고 해도 연중 내내 100%로 돌지 않습니다. 정비·고장·운영 조건을 감안하면 “평균적으로 공급 가능한 전력”은 보통 정격의 80~90% 수준(0.8~0.9GW)으로 보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그렇게 단순 환산해도 16GW를 받치려면 원전 18~20기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여기서 수도권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납니다. 수도권은 이미 전력수요가 과밀합니다. 전력거래소 자료를 보면 수도권은 전력수요 비중 41.1%인데, 발전설비 비중은 32.5%에 그칩니다. 말 그대로 다른 시·도에서 전기를 받아 쓰는 구조입니다. 결국 수도권에 산업을 더 얹을수록 결론은 한쪽으로 좁혀집니다. 송전선·변전소를 더 깔자.

 

문제는 그게 “시설”로 끝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송전은 돈만 드는 사업이 아닙니다. 갈등이 생기고 시간이 늘어납니다. 지역을 설득하고, 보상하고, 노선을 우회하는 동안 일정은 미뤄지고, 기업은 그 지연을 “불확실성 비용”으로 계산합니다. 전력은 물리적으로도 멀어지지만, 투자 환경도 같이 흔들립니다.

 

반대로 호남으로 오면 논리가 단순해집니다. 전기를 비교적 원활히 공급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전남만 놓고 봐도 태양광 누적 설비가 약 5.9GW(2023년 기준) 수준으로 집계됩니다. 그리고 더 상징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전력거래소가 계통 제약 등을 이유로 출력제어를 공지하는 일이 반복된다는 점입니다. 쉽게 말하면, 전기는 생기는데 그 전기를 산업으로 바꿀 자리(수요)가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RE100까지 얹히면, 입지 논쟁은 더 분명해집니다. 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예전에는 이미지처럼 소비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EU의 CBAM(탄소국경조정제도)은 특정 품목에 대해 수입품 생산 과정의 내재탄소(embedded emissions)에 상응하는 탄소비용을 반영하는 장치입니다. 물론 “반도체가 당장 CBAM 대상이라 탄소세가 0이 된다” 식으로 단정하면 위험합니다. 다만 방향성은 명확합니다. 탄소비용·탄소공시·공급망 요구가 강해지는 시장에서 “재생전력으로 만든 제품”은 갈수록 유리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수출로 먹고사는 산업일수록, RE100은 결국 준비 비용이 아니라 미준비 리스크가 됩니다.
그래서 해법은 단순합니다. 전기를 위로 끌어올릴 게 아니라, 전기를 먹는 산업을 아래로 내려보내자.

 

2) 물, 수도권에 공장을 붙잡아두면, 물길이 길어진다
전기 얘기만 하면 반도체가 다 설명되는 것 같지만, 물을 빼놓으면 반쪽입니다. 초순수(초고순도 물)를 만들고, 공정을 씻고, 냉각하고, 폐수를 처리하는 순간까지 물은 끝까지 따라옵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 “물이 있나 없나”가 아니라 끊기지 않게, 예측 가능하게 공급할 수 있느냐입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수도권 입지는 점점 불리해집니다. 물이 모자라서라기보다, 수도권에 산업을 계속 붙잡아두면 결국 물길을 더 길게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통합용수공급 1단계만 봐도, 팔당댐에서 용인 국가산단까지 46.9km 전용관로를 새로 놓고 2031년 1월부터 하루 31만 톤 공급을 시작하겠다는 계획이 공개돼 있습니다. 더 크게 보면 2034년까지 총사업비 2조2000억 원을 들여 용인 두 곳의 반도체 클러스터에 하루 107만2000톤을 공급하는 인프라를 깔겠다는 로드맵도 같이 제시돼 있고요.
여기서 저는 한 번 묻고 싶습니다. 이게 정말 “물이 없어서” 하는 일일까요. 아니면 산업을 수도권에 고정해두려니 물길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걸까요.

 

게다가 팔당은 그냥 댐이 아닙니다. 수도권 핵심 상수원과 직결돼 있고, 한강수계는 상수원 수질개선과 주민지원 등을 별도 법 체계로 관리합니다.
이런 곳에서 산업용수 수요가 커지면, 가뭄이나 수요 급증 같은 변수가 생길 때마다 “식수 우선”과 “산업 안정” 사이의 우선순위가 정치 이슈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관로는 물만 옮기는 게 아니라 논쟁거리도 같이 옮기는 길이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호남 쪽은 결이 완전히 다릅니다. 호남은 예로부터 한반도의 농업을 담당했던 지역으로서 가장 물이 풍부한 곳입니다. 뿐만 아니라 산업용수로 전환해 공급하는 ‘설계’가 가능한가라는 점에서 이미 많은 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광양(Ⅳ) 공업용수도 사업은 주암댐을 수원으로 하루 10.6만 톤 규모 취수장과 약 46.2km 도수관로를 설치해 여수·광양 국가산단에 공급하는 계획이고,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습니다.
결국 수조 원을 들여 장거리 관로를 깔아야만 공장이 굴러가는 입지라면, 그 자체로 “좋은 자리”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지역이기주의를 넘어서, 우리는 이제 입지를 감정이 아니라 객관적 지표로 따져야 합니다. 물길이 길어질수록 비용이 늘고, 갈등도 늘고, 일정도 늦어집니다. 반도체처럼 속도가 생명인 산업에서 그건 곧 경쟁력의 손실입니다.

 


3) 물류: 해상은 광양, 항공은 “인천에서 무안으로” 단계적으로
물류 얘기만 나오면 꼭 이런 반박이 붙습니다. “공항은 결국 인천 아니냐.” 맞는 말입니다. 다만 거기서 바로 결론을 내리면 논의가 너무 단순해집니다. 반도체 물류는 ‘항만 vs 공항’ 싸움이 아니라, 뭘 어디로 어떻게 나눠 실을지를 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큰 덩어리부터 보면 답이 비교적 빨리 나옵니다. 장비나 대량 자재, 꾸준히 들어오는 원부자재는 결국 해상이 기본입니다. 광양은 이 부분에서 이미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양수산부가 정리한 2024년 실적을 보면, 광양항은 201만 TEU를 처리했고 전년 대비 7.8% 증가, 3년 만에 200만 TEU 선을 다시 넘어섰습니다.
게다가 항만은 부두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광양의 강점은 ‘뒷배경’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수광양항만공사 자료를 보면 광양항 배후단지는 현재까지 총 440만㎡가 개발돼 운영 중이고, 동·서측 배후단지는 자유무역지역(FTZ)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FTZ 면적도 약 904만㎡로 잡혀 있습니다.
배후단지와 FTZ가 중요한 이유는, 반도체 클러스터 물류는 “내렸다→끝”이 아니라 “내렸다→보세/창고→가공·조립→재수출” 같은 뒷단이 붙어야 진짜 산업 물류가 되기 때문입니다. 광양은 그 그림을 그릴 바닥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항공은 정직하게 지금 대한민국 항공화물 허브가 인천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자료만 봐도 2024년 국제 항공화물이 295만 톤, 그중 환적화물만 118만 톤(약 40%)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단기 처방은 깔끔하게 가져가면 됩니다. 급한 화물은 인천으로 가야합니다.
대신 ‘중장기’는 다르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무안이 단숨에 인천을 대체한다는 말이 아니라, 무안이 커질 수밖에 없는 판이 깔리고 있다는 쪽이죠. 광주 군·민간공항을 무안으로 통합 이전하는 합의가 이루어졌고, 호남고속철도 2단계(광주송정~목포) 사업도 사업기간이 2015~2027년으로 정리돼 있습니다.
공항 통합과 철도 연결이 맞물리면, 공항은 “여객”을 넘어 산업 물류 공항으로 커질 여지가 생깁니다. 당장 오늘부터 인천을 끊자는 얘기가 아니라, 물량이 붙는 순간부터는 “왜 굳이 인천까지 올려야 하지?”라는 질문이 현실이 되는 겁니다.

 

여기까지 따져보면, 결국 하나로 정리됩니다. 우리는 산업을 수도권에 붙잡아두고 전기와 물을 끌어올릴 것인지, 아니면 전기와 물이 있는 곳으로 산업을 옮겨 갈등과 비용 자체를 줄일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반도체는 인프라 산업입니다. 입지는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수치로 결정됩니다.
전기는 RE100과 수출 경쟁력으로 연결되고, 물은 장거리 관로의 비용·리스크로 연결되며, 물류는 광양(해상)과 인천→무안(항공)의 단계 모델로 굴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이 선택은 지방 전역에 전염병으로 퍼져있는 청년 소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이 됩니다. 일자리가 수도권으로만 쏠리면 청년은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산업의 지도가 바뀌면, 인구의 지도도 뒤따라 바뀔 것입니다. 호남이 바라는 것은 동정이 아니라 엔진입니다.
이제 정치는 결단만 남았습니다.
전기를 끌어올리는 나라가 아니라, 산업을 내려보내는 나라로. 이번에는 호남에 효능감 있는 정치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현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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