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대표하는 화려한 디저트 마카롱은 오늘날 카페와 편의점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대중 간식이다. 하지만 그 기원은 17세기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에서 시작됐으며, 한때는 왕의 권위를 과시하는 사치의 상징이었다. 설탕과 아몬드로 만든 이 작은 과자는 단순한 달콤함을 넘어 권력 구조와 식민지 착취의 역사를 품고 있다.
베르사유 궁전, 마카롱의 황금기
루이 14세(재위 1643~1715)가 베르사유 궁전을 프랑스 절대왕정의 중심으로 만든 17세기 후반, 마카롱은 궁정 생활의 필수 아이템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유래한 단순한 아몬드 과자인 마카롱은 프랑스에서 설탕을 듬뿍 넣어 부드럽고 고급스럽게 재탄생했다. 왕실 파티시에들은 루이 14세의 특별 주문으로 마카롱을 제작했으며, 왕은 이를 매일 간식으로 즐겼다. 궁정 연회에서 마카롱이 제공되는 자리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귀족들의 위계와 왕권의 위엄을 확인하는 정치적 무대였다. 누가 왕의 식탁에 앉아 이 귀한 과자를 맛볼 수 있는지가 곧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짓는 척도였다. 베르사유의 화려한 연회는 유럽 전역에 프랑스 왕정의 부를 과시하는 쇼윈도였고, 마카롱은 그 중심에 서 있었다.
당시 마카롱 제작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몬드는 지중해 지역에서 수입되는 고가의 견과류였고, 설탕은 더욱 귀했다. 17세기 유럽에서 설탕은 '하얀 금'으로 불릴 만큼 비싼 사치품으로, 프랑스 왕실은 이를 아낌없이 사용해 마카롱을 만들었다. 이러한 과시적 소비는 루이 14세의 '태양왕'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궁정인들은 마카롱을 먹으며 왕의 은총을 받았고, 이는 충성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실제로 베르사유 기록에 따르면, 왕실 주방에서 매일 수백 개의 마카롱이 생산됐으며, 이는 왕정의 경제력과 물류 체계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설탕 뒤에 숨겨진 어두운 그림자: 식민지와 노예제
마카롱의 달콤함 뒤에는 카리브해 식민지의 비극이 도사리고 있다. 17세기 프랑스는 생도밍그(현재 아이티), 과들루프, 마르티니크 같은 카리브 섬에서 대규모 설탕 플랜테이션을 운영했다. 이곳에서 생산된 설탕은 프랑스 본토로 실려 왕실과 귀족들의 식탁을 장식했다. 그러나 설탕 생산은 극도로 가혹한 노예 노동에 의존했다.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은 플랜테이션에서 하루 18시간 이상 일하며 사탕수수 작물을 재배하고 가공했다. 프랑스 왕실의 사치스러운 소비는 이러한 착취 구조를 유지하는 데 직접적으로 기여했다. 마카롱 한 입은 베르사유의 화려함만큼이나 카리브해의 고통을 상징했다.
이 구조는 프랑스 경제의 핵심이었다. 18세기 초 루이 14세 시대에 설탕 수입은 프랑스 무역 수입의 4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컸다. 왕실은 식민지 총독들을 통해 노예 무역을 장려했고, 베르사유 연회에서 소비되는 설탕 양은 식민지 정책의 성공을 과시하는 척도였다. 그러나 이 '달콤한' 경제는 1791년 아이티 노예 반란으로 폭발했다. 반란군은 설탕 플랜테이션을 불태우며 프랑스 지배를 무너뜨렸고, 이는 프랑스 혁명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마카롱은 이렇게 권력의 상징이자 불평등의 산물이었다. 음식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둘러싼 제국주의와 계급 구조를 무시할 수 없다.
프랑스 혁명 이후: 수도원에서 파티시에로의 전환
프랑스 혁명(1789~1799)으로 왕정이 무너지면서 마카롱도 운명의 변곡점을 맞았다. 귀족들의 사치가 금지되자, 마카롱 제작 기술은 수도원으로 옮겨갔다. 낭트와 생장 드 가르송의 수녀들은 생계를 위해 마카롱을 판매하며 전통을 이어갔다. 이 '수도원 마카롱'은 단순한 아몬드 과자로, 현대의 화려한 색상 속살 버전과 달리 소박했다. 혁명 후 19세기 들어 파리 파티시에들이 속을 크림으로 채운 새로운 마카롱을 개발하면서 인기가 되살아났다. 특히 1862년 라 뒤레(Ladurée) 가문이 두 장의 마카롱을 크림으로 붙인 '더블 마카롱'을 선보이며 고급 디저트로 재탄생했다.
20세기 들어 마카롱은 글로벌 아이콘으로 성장했다. 파리 명품 브랜드 피에르 에르메, 라뒤레가 전 세계로 확장하며 마카롱은 패션과 연결됐다.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2006)에서 화려한 마카롱 장면은 이 과자를 대중 문화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계급 논쟁은 이어졌다. 고가의 명품 마카롱은 여전히 부유층의 전유물로 여겨지곤 했다.
현대 마카롱: 대량 생산과 소상공인의 꿈
오늘날 마카롱은 완전히 대중화됐다. 자동화 생산 라인과 산업화된 유통망 덕분에 가격이 낮아졌고, 편의점과 온라인 쇼핑몰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2010년대 중반부터 마카롱 붐이 일어나, 스타벅스나 CU 같은 체인에서 저렴한 마카롱을 판매한다. 소상공인들은 홈베이킹 키트나 소규모 공방으로 창업에 뛰어들며 창의적인 맛(김치 마카롱, 한라봉 등)을 개발한다. SNS 인스타그램에서는 컬러풀한 마카롱 사진이 바이럴을 타며 '힐링 디저트'로 자리 잡았다.
이 변화는 기술 발전과 소비자 취향의 결과다. 과거 왕실 주방에서 수작업으로 만들던 마카롱은 이제 기계로 하루 수만 개 생산된다. 프랑스에서도 라뒤레 공장은 연간 수백만 개를 찍어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한다. 그러나 이 대중화 속에서도 '아티산 vs 산업' 논쟁이 있다. 수제 마카롱은 여전히 프리미엄으로, 대량 제품은 접근성으로 경쟁한다.
마카롱이 말하는 시대의 교훈
왕의 과자였던 마카롱은 350년 넘게 변모하며 권력, 착취, 혁명, 대중화를 증언한다. 베르사유의 연회장에서 시작해 카리브 플랜테이션의 희생을 딛고, 혁명 후 수도원에서 부활한 이 작은 과자는 오늘 우리 손에 쥐어져 있다. 달콤한 한 입 뒤에 숨은 역사를 읽는 것은 음식을 넘어 사회를 이해하는 일이다. 마카롱처럼, 역사는 화려한 겉모습 속에 복잡한 층위를 품고 있다. 다음 번 마카롱을 먹을 때, 그 조각이 전하는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총괄사무국장 박시현 (gkyh20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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