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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in chief Column] 봄의 전령사가 진남관에서 보내는 시그널

윤진성 편집국장   |   송고 : 2026-02-17 07:31:19
여수 진남관 입구에 막 피어나는 매화의 연분홍빛 앞에서는 무장해제당하고 만다.

여수 진남관(鎭南館).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남쪽의 왜적을 진압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그 서슬 퍼런 결의가 68개의 거대한 기둥마다 박혀 있다. 하지만 아무리 서슬 퍼런 호국(護國)의 성지라 한들, 흐르는 계절의 앞날을 막아설 재간이 있을까. 지금 여수 바다를 건너온 봄의 전령사가 진남관의 담벼락을 두드리고 있다. 이건 단순한 기온의 변화가 아니다. 고단한 겨울을 버텨낸 우리 영혼에 보내는 강렬한 생존의 시그널이다.

 

진남관 뜰에 서서 돌산대교 쪽을 바라본다. 겨울 내내 날카롭던 바닷바람의 끝이 뭉툭해졌다. 역사는 늘 무겁고 장엄하지만, 자연은 늘 가볍고 경쾌하게 그 위를 덮는다.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삼았던 이 견고한 목조건축물조차, 이제 막 피어나는 매화의 연분홍빛 앞에서는 무장해제당하고 만다. 칼날 같던 역사의 긴장이 햇살 한 줌에 녹아내리는 이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진정 강한 것은 버티는 기둥이 아니라, 기어이 피어나는 꽃잎이라는 것을.

 

남도의 봄은 '밀당'의 고수다. 올 듯 말 듯 감질나게 하다가, 어느 순간 코끝에 확 끼쳐오는 바다 꽃향기. 이 미묘한 시그널을 도시의 속도에 매몰된 이들이 어찌 알겠는가.단청의 퇴색된 빛깔 사이로 스며드는 선명한 채도의 햇살. 기둥의 서늘한 기운을 지우며 차오르는 훈풍의 온기. 적막을 깨고 들려오는 가막섬 근처 갈매기의 가벼워진 날갯짓. 이 신호들을 놓치고 산다면, 우리는 그저 '살아있는 것'이지 '삶을 향유하는 것'은 아니다. 진남관이 굽어보는 저 바다는 이미 알고 있다. 겨울의 시린 파도는 이미 봄의 윤슬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는 것을.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삼았던 여수 진남관에서 바라본 전경 

 

진남관은 여전히 건재하다. 비바람에 깎이고 세월에 할퀴어도 그 자리를 지키는 건, 단순히 나무가 단단해서가 아니라 매년 찾아오는 봄의 위로를 믿기 때문일 터다. 당신의 마음도 마찬가지 아닐까. 지난겨울, 세상의 풍파에 맞서느라 잔뜩 날이 서 있던 당신의 마음 기둥에 이제 봄의 시그널을 허락하라. 날카로운 통찰은 차가운 머리가 아니라, 계절의 변화를 읽어내는 뜨거운 심장에서 나온다.

 

"알랑가 모르것네, 지금 당신 곁에 와 있는 이 봄이 얼마나 절박하게 당신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지." 진남관 기둥 뒤에 숨어 살짝 고개를 내민 봄볕을 보며, 오늘 하루쯤은 무거운 갑옷을 벗어던져도 좋겠다. 자연이 보내는 이 다정한 시그널이 바로 당신을 향한 구원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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