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의 수준은 무엇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가 아니라, 그것을 어떤 그릇에 담아 쓰는가로 드러난다. 우리는 오랫동안 ‘채우는 일’에 몰두해왔다. 성장률, 자산 규모, 기술 속도, 권력의 크기. 물질의 시대는 그렇게 빠르게 팽창해왔다. 그러나 지금, 곳곳에서 균열이 보인다. 넘치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롭지만 불안하다. 이 현상은 단순한 경기 변동이 아니라 그릇의 문제다. 정치는 사회의 방향을 담는 그릇이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는 권력의 크기에 비해 그릇이 지나치게 작다. 갈등을 조정하기보다는 증폭시키고, 책임을 담기보다는 상대를 비워내는 데 에너지를 쓴다. 제도는 고도화되었지만, 정치의 마음 그릇은 성숙하지 못했다. 그래서 국정은 늘 넘치고, 국민의 신뢰는 새어 나간다.
경제는 원래 사람의 삶을 담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은 사라지고 숫자만 남았다. GDP는 성장했지만 체감 경기는 후퇴했고, 자본은 축적되었지만 마음은 가난해졌다. 돈의 크기를 키우는 데는 성공했으나, 공정·연대·배려라는 그릇을 키우는 데는 인색했다. 그래서 경제는 커졌지만 사회는 피로해졌다. SNS와 플랫폼은 사람들을 실시간으로 연결했지만, 서로를 담아낼 여백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말은 넘치고, 공감은 고갈된다. 사회적 분노는 즉각 분출되지만, 상처를 받아줄 그릇은 없다. 결국 분열은 일상이 되고, 침묵은 또 다른 탈출구가 된다. 문화는 시대의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그러나 오늘의 문화는 너무 빠르고, 너무 즉각적이다. 조회 수와 알고리즘은 콘텐츠를 쏟아내지만, 사유와 성찰을 담을 시간은 허락하지 않는다. 웃음은 많아졌으나 여운은 짧아졌고, 소비는 늘었으나 기억은 남지 않는다.
종교는 원래 인간의 불안을 품는 가장 큰 그릇이었다. 그러나 일부 종교는 신앙의 깊이보다 조직의 크기를 먼저 키워왔다. 위로보다는 규율을, 성찰보다는 확신을 강조하면서 질문을 담아내지 못했다. 질문을 잃은 신앙은 결국 사람을 떠나보낸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큰 그릇’이 아니라 ‘다른 그릇’이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가질 필요가 없다. 대신 더 잘 담을 줄 아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속도보다 여백을, 경쟁보다 공존을, 성과보다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그릇 말이다. 마음의 시대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정치가 분노를 담아내고, 경제가 사람을 품고, 사회가 침묵을 허락하며, 문화가 사유의 시간을 제공하고, 종교가 다시 질문을 환대하는 것. 그때 비로소 우리는 물질 이후의 시대를 건너갈 수 있지 않을까. 그릇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것을 채워도 결국 넘치거나 깨진다.
지금 이 시대가 우리에게 묻는 질문은 단순하다. “당신은 무엇을 얼마나 가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그릇으로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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