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강렬했던 배우 이대근, 그가 남긴 건 명성이 아니라 ‘멈춤’이었다"

강렬한 눈빛과 독보적인 카리스마로 한국 영화사를 장식한 배우 이대근. 한 통의 안부 전화는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 들게 했다. 배우 이대근과의 전화 한 통이 던진 질문은 삶이란 끊임없는 전진이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는 한 장면일지도 모른다. 배우 이대근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스치는 것은 말이 아니다. 강렬한 눈빛이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던 침묵의 표정, 한 번 응시하면 쉽게 잊히지 않던 얼굴. 그는 설명하지 않았고, 변명하지 않았으며, 대신 존재했다.

한국 영화가 가장 거칠고 뜨거웠던 시절, 이대근은 그 시대의 남자였다. 선과 악의 경계에 서 있었고, 폭력과 고독, 욕망과 체념이 뒤섞인 인물들을 온몸으로 살아냈다. 그의 연기는 기술이 아니라 체온에 가까웠다. 그래서일까. 그의 인생 또한 영화 같았다.화려한 조명 아래의 순간보다, 카메라가 꺼진 뒤의 시간이 더 길고 깊었다. 최근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미국에서 전해진 배우 이대근의 안부였다. “잘 지내나.” 짧은 한마디. 그러나 그 목소리에는 한 시대를 통과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무게와 온도가 담겨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배우 이대근의 진짜 연기는 스크린 위가 아니라 삶 그 자체였다는 사실을. 인생은 늘 전진하는 서사가 아니다. 어떤 장면에서는 멈춰 서야만 한다. 몸이 멈추고, 말이 멈추고, 비로소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이대근은 그런 시간을 피해 가지 않았다. 시대의 변화, 개인의 굴곡, 배우로서의 명암을 모두 껴안고자기 몫의 시간을 끝까지 살아냈다. 그래서 그의 인생은 화려함보다 진짜 같다. 요즘 우리는 너무 빠르다. 성과와 결과, 효율과 속도를 삶의 기준으로 삼는다. AI처럼 계산하며 살고, 멈춤을 실패로 오해한다. 그러나 이대근의 삶은 말한다. 멈춤은 끝이 아니라 장면 전환이라고.

가장 중요한 순간은 아무도 보지 않는 정지 화면일 수 있다고. 글을 송고하고, 자리에 누워 삶의 방향을 되묻던 어느 날, 그의 전화는 하나의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아직 장면은 끝나지 않았다.” 배우 이대근은 한 시대의 얼굴이었고, 이제는 한 인생의 표정이 되었다. 강렬함 뒤에 남은 침묵, 그 침묵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가장 큰 울림으로 남는다. 삶은 결국 성공한 장면보다 버텨낸 장면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배우 이대근은 그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해온 한 시대의 배우이자, 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