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칼럼] 첫눈이 내리던 서울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설렘의 능력’에 대하여

어제 서울에 첫눈이 내렸다. 도심 한복판에서도 잠시 소음이 멎은 듯한 고요가 스며들었다. 차창 밖으로 느리게 흩날리는 눈송이를 바라보는 순간, 오래 묻어두었던 질문 하나가 마음속에서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나는 왜 더 이상 첫눈에 설렘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어린 시절, 첫눈은 특별한 날이었다. 알람이 없어도 눈발이 내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곤 했고, 학교 운동장에 첫 발자국을 남기며 혼자만의 성취감을 느꼈다. 손바닥 위에서 금세 녹아내리는 눈송이를 보며 신기해하던 그 작은 호기심. 그 모든 것이 ‘살아 있음’을 증명해주던 감정들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첫눈을 계절 뉴스의 한 줄로 받아들인다. 출근길이 미끄러울까 걱정하고, 교통 체증을 떠올리며, 설렘을 실무적인 계산 속에 밀어 넣어 버린다. 감정은 건조해졌고, 마음은 점점 사막처럼 갈라지고 있다. 왜 이런 변화가 찾아온 걸까. 사회는 끊임없이 성과를 요구하고, 속도를 강요한다. 감성을 비용으로 계산하고, 느림을 비효율로 취급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내면의 감각을 스스로 차단하는 법을 배워버린 것은 아닐까. 첫눈이 내리던 어제, 서울의 풍경은 분명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보다 더 선명하게 느껴진 건, 바쁘다는 이유로 잊고 살아온 감정의 잔향, 그리고 우리가 놓쳐온 삶의 결이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메마른 삶에 익숙해진 걸까. 혹시 처음부터 메말라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나도 모르게 감성을 후순위로 밀어낸 것은 아닐까. 첫눈은 매년 우리에게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아직도 설렐 줄 아는가?” 올해 첫눈 앞에서 나는 그 질문을 피하지 않기로 했다. 감정이 마르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메마른 일상도 다시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이 계절이 조용히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첫눈은 오래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도시는 흰색으로 덮였고 우리 마음 속 잊고 지낸 감정들도 잠시나마 깨어났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이렇게 기록한다.설렘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시 불러내길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