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4월, 독재의 총칼 앞에 맨몸으로 맞섰던 초.중고학생들이 있었다. 66년이 흐른 지금, 그날의 처절했던 기록을 복원하고 ‘무명의 용사’들을 역사의 전면에 세우기 위해 분투하는 이가 있다. 바로 양재근 4·19혁명 광주 서석초교 구금자동지회장이다. 본지는 양 회장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5·18에 가려지고 서울·마산 중심의 기록에서 소외되었던 ‘광주 서석초 4·19’의 진실과 그가 꿈꾸는 역사 바로 세우기의 과제를 FAQ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Q1. ‘서석초등학교 구금 사건’이란 무엇인가?
A1. 양재근 회장 "1960년 4월 19일, 광주 지역 7개 고교(광주고·광주공고·광주농고·광주상고·숭일고·조대부고·광주여고) 학생들이 주도한 연합 시위 과정에서 발생한 비극입니다. 당시 경찰과 계엄군은 학생들을 무차별 체포해 서석국민학교(현 서석초) 강당에 가두었습니다. 확인된 인원만 693명으로, 이는 전국 4·19 혁명 관련 단일 장소 구금 사례 중 최대 규모입니다."
Q2. 당시 구금 현장의 참혹함은 어떠했나?
A2. 양 회장 "일주일 동안 밥도 제대로 주지 않았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배고픔에 지쳐 주먹밥 하나를 두고 눈물을 흘렸죠.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못 가게 해 5명씩 조를 짜야 했고, 개머리판으로 두들겨 맞는 것은 일상이었습니다. 저 역시 고교 1학년의 어린 나이에 배후 세력을 대라며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 어혈을 치료하느라 똥물을 대나무에 걸러 마시며 고통받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Q3. 왜 그동안 이 엄청난 사건이 역사적으로 소외되었나?
A3. 양재근 회장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정치적 탄압입니다. 4·19 혁명 1년 만에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혁명은 '의거'로 폄하되었고 기록은 삭제되었습니다. 둘째는 광주 특유의 상황입니다. 이후 발생한 5·18 민주화운동의 상징성이 워낙 크다 보니, 그 뿌리가 된 4·19의 기록들이 묻혀버린 것입니다. 서울이나 마산은 활발히 부각되었지만, 광주는 주도했던 선배들이 정치적 풍파에 휘말려 흩어지면서 목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Q4. 66년 만에 기사가 빛을 보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A4. 양 회장 "기록이 없었습니다. 경찰과 검찰의 인사 조치 기록은 남아있었지만, 학생들의 구금 명단은 검열로 인해 싹 지워졌더군요. 포기하지 않고 국가기록원과 보훈처를 끈질기게 뒤져 693명의 명단을 찾아냈습니다. 최근 광주시교육청과 협의해 사적지 선정 및 조형물 조성을 추진하게 된 것은 늦었지만 천만다행한 일입니다."
Q5. ‘젊은 세대’들이나 국민들에게 4·19 정신은 어떤 의미인가?
A5. 양재근 회장 "4·19는 불의에 항거해 정부를 바꾼 진정한 시민 혁명이었습니다.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의 쟁취를 위한 뿌리에는 4.19 혁명과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와 정의를 향해 몸을 던졌던 그날 고등학생들의 역동성이야말로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에너지입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는 이런 살아있는 역사의식 위에서 세워질 수 있습니다."
Q6. 앞으로의 계획과 국민, 특히 광주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A6. 양재근 회장 "서석초등학교 강당을 사적지로 지정하고, 그곳에 693명의 이름을 새긴 조형물을 세우는 것이 제 마지막 소명입니다. 땡감도 떨어지고 익은 감도 떨어지듯 우리 세대는 곧 사라지겠지만, 역사는 남아야 합니다. 서석초를 민주주의 교육의 장으로 만들어 우리 후손들이 광주의 자부심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길 바랍니다."
▶ 기자의 시선: 4.19 혁명은 헌법의 '뿌리'이자 '정당성'의 근거로 헌법재판소는 4.19를 우리 헌법 체제의 성립 근거(정통성)로 봅니다. 헌법 전문(前文)의 명시에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헌재는 이를 통해 4.19가 단순한 시위가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최고 규범적 가치'임을 분명히 합니다. 저항권의 발현으로 헌재는 4.19를 국가 권력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헌법의 기본 원리를 파괴했을 때, 국민이 최후의 수단으로 행사할 수 있는 '저항권'의 전형적인 사례로 해석합니다. 어떤 법률이나 국가 행위가 민주주의에 반한다면, 헌재는 '4.19 정신'을 잣대로 삼아 그 위헌 여부를 판단합니다. 즉, 4.19는 우리 헌법의 출발점이자 나침반인 것입니다.
▶ 반면, 5.18 민주화운동 '훼손된 민주주의의 회복'과 '정의의 실현', 5.18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해석은 국가 폭력에 대한 단죄와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실천적 측면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헌재는 5.18을 "헌법질서를 파괴하려는 내란 세력에 맞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난 민주화운동"으로 정의합니다.(5.18 특별법 합헌 결정 등), 헌재는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있다"는 법리를 확립하는 데 5.18을 핵심 근거로 삼았습니다. 이는 권력이 아무리 강력해도 헌법 위에 있을 수 없음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5.18은 국가가 저지른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시효가 지났더라도 처벌할 수 있게 하는 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 이에 4.19 광주 서석초 693명의 고통이 '헌법적'으로 재조명되어야 하는 이유는 서석초의 희생은 학생들의 헌법재판소의 법리 중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와 직결됩니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10조), 당시 권력은 보호받아야 할 어린 학생들에게 총구를 겨눔으로써 이 헌법적 의무를 정면으로 위반했습니다. 5.18이 거대한 정치적·사회적 담론 속에서 법적 정의를 세웠다면, 4.19 서석초의 기록은 헌법이 보호해야 할 '가장 약한 국민'의 고통을 국가가 어떻게 방기했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증거입니다. 이들의 고통을 보듬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는 그 어떤 권력 유지보다 학생들의 생명을 우선해야 한다"는 헌법의 제1원칙을 확립하는 이유입니다.
▶ 이번 데일리비즈온 심층 인터뷰를 통해 양재근 회장의 투쟁은 과거의 기록에 머물지 않는다. 이는 권력에 의해 난도질당한 역사를 개인의 집념으로 복원해낸 '인사이트'의 승리다. 자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한 '뿌리'이자 '정당성'의 근거를 확립하기 위해 4.19 광주 서석초 693인의 명예가 완전히 회복되기 위해 "국가는 그 어떤 권력 유지보다 학생들의 생명을 우선해야 한다"는 헌법의 제1원칙을 확립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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